미국촌놈의 이야기
비엔나, 잘츠부르크, 뮌헨 여행 20. 할슈타트 - 화장실 감옥 본문
아름다운 할슈타트 풍경 속에서 엄마와 승희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레스토랑에서 갔어야 했지만 늦었다. 공공화장실 입장티켓을 파는 기계가 있었는데 한 장당 2유로로 굉장히 비쌌다. 우린 4유로나 내고 두 여성의 화장실이용권을 샀다. 승희부터 이용하고 나왔다. 들어갈 때는 옛날 한국 지하철 개찰구처럼 티켓을 찍으면 막혀있던 철막대기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승희도 들어갈 때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나오려고 티켓을 찍으니 이미 이용했다 그러더니 그 철막대기는 꿈쩍을 안 했다. 갇혀버린 승희와 그걸 보던 나는 당황했다. 승희는 어쩔 수 없이 개찰구와 벽틈의 마른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통해 나왔다. 문제는 엄마였다. 곧 엄마가 나올 차례였다.
그때 마침 남자화장실에서 전형적인 미국인 비만 체형의 중년 남성이 나와 상황 파악을 하더니 어쩔 줄 몰라했다. 승희와 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티켓을 찍어도 안 먹히고 철막대기는 움직일 생각도 안 하고 승희처럼 빈틈으로 지나가기엔 그의 몸이 너무 컸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투덜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갇힌 그는 영어로 자꾸 "나 여기서 노는 거 아냐 갇힌 거야 이상하게 보지 말아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연속적으로 얘기했다. 내가 너무 민망해하는 그에게 "걱정하지 마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라고 했더니 그는 "아냐 분명 표정에서 느껴져 나 민망해"라고 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와 나는 서로 미국에서 왔음을 영어 악센트로 눈치챘다. 그가 먼저 "넌 어디서 왔어?" 라고묻자 난 뉴저지라고 밝혔다. 그는 웃으며 자긴 애리조나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동향사람을 만나 은근히 반가웠다.
마침 우리 엄마도 여자화장실에서 상쾌한 표정으로 나오셨다. 그 상쾌한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엄마 역시 그 남자와 같은 상황으로 둘은 물리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위로 올라가기엔 너무 높고 옆에 틈은 너무 좁았다. 남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기 딸 이름이 다이앤이고 저기 옆에 펍에 있으니 데려와달라고 요청했다. 승희가 후다닥 그 딸을 데리러 뛰어갔다.
마침 우리 엄마는 그 남자보다 우월한 운동신경이 있어서였을까 개찰구 밑으로 유연하게 나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엄마도 나왔고 우리는 그냥 떠나도 됐지만 그를 끝까지 도와주고 싶었다. "Where is my dad?!" 다이앤으로 보이는 문신과 피어싱 가득하고 전형적인 자유분방한 미국여성이었다. 화장실에 갇힌 자기 아빠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녀와 승희는 이 화장실 직원을 데려왔다.
사실 철막대기문을 힘을 빡주고 밀면 열리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러나 밀라는 문구도 없었고 엄청 뻑뻑해서 밀어서 여는 구조라는 걸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 애리조나아저씨는 방금 남자화장실로 들어간 남자가 방금 자기 비웃었다고 갇힌 모습 보고 놀리겠다고 웃긴 사람이었다. 다이앤은 계속 웃으며 이 상황을 사진으로 기념하겠다고 같이 사진을 찍어 에어드롭으로 공유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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